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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인문 사회 과학

#36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깨알 정리(P.576~끝) 특이점, 프랑켄슈타인의 예언

by Bon ami Bon ami 2020. 6. 26.

사피엔스    유발 노아 하라리 조현욱 옮김이태수 감수 출판사 김영사







 

청록색은 제 이야기이구요

검정색은 책에 실린 내용을 간추린 것입니다.

 

4부 과학혁명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또 다른 삶>      P.576

 

생명의 법칙을 바꾸는 제3의 방법은

완전히 무생물적 존재를 제작하는 것이다.

대표적 예는 독립적인 진화를 겪을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과 컴퓨터 바이러스다.

유전적 프로그래밍은 컴퓨터 과학에서

가장 흥미로운 분야로서 유전자 진화를 모방한다.

많은 프로그래머가 창조자에게서

완전히 독립한 상태로 학습, 진화할 능력을 갖춘

프로그램을 창조하는 꿈을 꾼다.

프로그래머는 창조한 자가 되겠지만

피조물의 진화는 자유롭게 이뤄질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의 원형은 이미 존재한다.

바로 컴퓨터 바이러스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포식자인 백신 프로그램에

쫓기는 한편 다른 바이러스들과 경쟁하면서

스스로를 수없이 복제하며 퍼져나간다.

이 바이러스들은 살아 있는 피조물일까?

그것은 정의하기 나름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뇌를 휴대용 하드드라이브에

백업해서 노트북 컴퓨터에서 실행하는 경우다.

당신의 노트북은 사피엔스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일까?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완전히 새로운

디지털 마음을 창조한다면?

컴퓨터 코드로만 구성된 그 마음이

자아의식, 의식, 기억을 다 갖추고 있다면?

이 프로그램을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그것은 인격체일까?

그것을 지우면 살인죄로 기소될까?

 

머지않아 우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지도 모른다.

 

2005년 시작된 블루브레인 프로젝트

인간의 뇌 전부를 컴퓨터 안에서

재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컴퓨터 내의 전자 회로가 뇌의 신경망을

고스란히 모방하게끔 하는 것이다.

(자금만 잘 조성된다면 10~20년 내에 가능하다 함)

만일 성공한다면 이것은 생명이

유기화합물 영역에서 비유기물 영역으로

뛰어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2013년 유럽연합은 이 프로젝트에

10억 유로를 지원키로 결정함)

 

이 글을 읽고 나서

비유기물공학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컴퓨터에 프로그램 된 의식을 지닌 존재는

유기물은 전혀 포함되지 않은 비유기물질이면서

의식을 지닌 존재입니다.

하여 우리 생명체와 똑같이 또 하나의 생명인 것이죠.

인간의 지적 설계에 의해 탄생한 피조물,

유기적 생명체가 아닌

비유기물공학에 의한 생명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 로봇도 비유기물 생명체이겠죠?

 

 

<특이점>      P.578

 

우리는 외부 세계는 물론

우리의 신체와 마음까지 조작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이 능력은 위험한 속도로 발달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영역의 활동이 전통적인 방식에

안주하지 못하고 재검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맞춤 의학의 시대, 환자의 DNA

맞춤 치료를 하는 의학시대가 도래했다.

 

의료가 주로 질병 예방과 치료가 아니라

인간 능력 강화에 있는 시대가 온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모든 인간에게 강화된 능력을 부여받을 자격이 있을까?

아니면 초인간 엘리트 족속이 새로 생겨날까?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시대다.

하지만 이제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상류계습은 자신들이 하류계급

보다 똑똑하고 강건하며 우수하다고 주장해왔다.

사실 가난한 농부의 아기는

황태자와 지능면에서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의학적 도움을 받는다면

상류계층의 허세가 머지않아

객관적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미래 기술의 진정한 잠재력은

호모 사피엔스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주선 같은 수송 수단과 무기만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 말이다.

 

영원히 젊은 사이보그에 비하면

우주선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사이보그가 번식도 하지 않고

성별도 없으며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직접 공유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다.

집중하고 기억하는 능력은 인간의 수천 배에 이르며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감정과

욕망을 가지고 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우리와 미래의 주인공들의 차이는

우리와 네안데르탈인의 차이보다 더욱 클 것이다.

우리의 후계자들은 신 비슷한 존재일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빅뱅을 특이점으로 정의한다.

그것은 알려진 모든 자연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지점이다.

시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빅뱅 이전에 무엇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새로운 특이점에

빠른 속도로 접근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리 세계에 의미를 부여했던 모든 개념

(, , 여자, 남자, 사랑, 미움)

완전히 무관해지는 지점 말이다.

 

세상이 너무나 발달한 나머지

과거의 전통적인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특이점의 시대가 도래한 듯 싶습니다.

 

겨우 모든 인간이 평등을 누리며 살게 되었는데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을 창조할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힙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는

사피엔스의 마지막 황금기를 살고 있나 봅니다.

 

우리의 감정과 욕망까지까지 주무르다니..

 

무서운 세상입니다...

 

 

<프랑켄슈타인의 예언>     P.582

 

1818년 메리 셸리는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출판했다.

우월한 존재를 창조하려 시도한 과학자가

결국 괴물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얼핏 보기에 프랑켄슈타인 이야기는 경고 같다.

우리가 신의 행세를 하려 들고 생명을 조작하면

심한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경고 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더욱 깊은 의미가 있다.

 

프랑켄슈타인 신화는 호모 사피엔스로 하여금

종말의 날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만든다.

프랑켄슈타인 신화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기술이 발달할 경우 호모 사피엔스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대체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그 존재는 체격뿐 아니라

인지나 감정 면에서 우리와 매우 다를 것이다.

 

과학자들이 신체뿐 아니라

정신도 조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면

우리는 힘든 시간을 거쳐야 할 것이다.

 

역사의 다음 단계에서는

기술적, 유기적 영역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과

정체성도 근본적인 변형이 일어나리라는 생각이다.

생명윤리라는 브레이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다른 종류의 존재로 업그레이드하는 과학 프로젝트를

절대로 중단하지 않을 것이다.

(중단한다고 생각한다면 순진한 착각이다.)

 

이런 프로젝트들은 불멸을 향한 탐구

(길가메시 프로젝트)와 깊이 얽혀 있다.

과학자들에게 왜 유전체를 연구하는지

왜 뇌를 컴퓨터에 연결하려 하는지

왜 컴퓨터 안에 마음을 창조하려 하는지 물어 보라.

 

그들은 병을 고치고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라고 대답할 것이다.

아무도 여기에 토를 달기 어렵다.(표준적인 정당화)

사실은 정신질환을 치료하는 것보다는 컴퓨터 속에

마음을 창조하는 것이 훨씬 더 극적인 함의다.

(이것이 진짜 과학자들이 하려고 하는 일이라는 것)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과학의 주력 상품인 이유가 이것이다.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우리는 머지않아

스스로의 욕망 자체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아마도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이 질문이 섬뜩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은 왜 섬뜩한 질문일까요?

 

...

 

그것은 우리의 욕망이 설계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본연의 욕망이 아니라

어떤 의도에 의한 설계된 욕망...

결국 우리 본연의 것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니까요.

길가메시 어깨에 목말을 타고

과학자들은 신체뿐 아니라 정신까지 조작할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정체성도 변형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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