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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문학

장미의 이름-움베르토 에코 장편소설(1992년 개역판)

by Bon ami Bon ami 2020. 7. 18.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출판사 열린책들


이 책은 길이도 엄청나게 길고, 서술되는 내용이 중세 기독교 역사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내가 모르는 내용이다 보니) 매우 어려웠다. 그뿐이랴. 8개 국어를 하는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인 저자의 방대하고 심오한 지식과 함께 (아는 것이 너무 많은 분이라) 라틴어 그리스어 불어 독일어 등등.. 의 언어가 무시로 출몰하는 바람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 흥미진진한 연쇄살인사건임에도 불구하고... 광신과 이단, 마녀사냥 등으로 얼룩진 중세 시대는 읽는 내내 나를 우울하게 했다.(현대를 살고 있는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는 내내 절감했다.)

이 소설은 7일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다. 기록자는 아드소, 주인공은 윌리엄 사부다.

아드소의 원고는 모두 7일 동안 있었던 일을 기록한 것이고, 하루하루는 전례 시간과 일치하는 시간대로 나누어져 있다.P.25

때는 주후 1327년 말, 루드비히 황제가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 아비뇽에 진치고 앉아 사악한 왕위 찬탈과 성직 매매를 일삼으며 사도를 욕되게 한 저 사교(邪敎)의 우두머리를 척결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 해이다(죄 많은 사교의 우두머리가 누구던가? 믿음이 없는 자들이 교황 요한 22세라고 부른 까오르의 자끄 바로 그 사람이다).P.30

멜크 수도원의 젊은 베네딕트 회 수련사였던 내가, 루드비히 황제의 직신(直臣)이었던 선친의 손에 이끌려 수도원의 평화로운 독방에서 나올 때의 사정은 대강 이러했다. 선친께서는 이탈리아도 두루 견문케 하고 황제 대관식도 직접 보게 할 요량으로 나를 데리고 다니신 것 같다.P.33

결국은 나를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박식한 수도사인, 바스커빌 사람 윌리엄의 수하에 넣기로 작심하시게 된다. 당시 윌리엄 수도사께서는 모종의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큰 도시 및 큰 수도원을 차례로 순방하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윌리엄 수도사의 필사 서기 겸 시자로 시봉하게 되었으니, 그 뒤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그분과 더불어 나는, 지금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후세 사람들에게는 좋은 마음의 양식이 될 터인 저 놀라운 사건을 목도할 수 있게 된다.P.34

장미의 이름’일?

이 책에는 장미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책의 제목은 <장미의 이름>이다.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또 거울이거니 장미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고, 우리의 운명을 설명하고, 우리의 삶을 읽어 준다. 장미는 아침에 피어, 만개했다가 이윽고 시들어가니까.P.49 윌리엄 사부의 말에 인용된 알라누스 데 인술리스의 시

이제 알 것도 같다. 우주라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쓰신 서책과 같은 것이다. 이 서책에서는 만물이 우리에게 창조자의 크신 은혜를 전한다. 바로 이 서책에서 만물은 삶과 죽음의 다른 얼굴이자 거울이 되며 바로 이 서책에서 한 송이 초라한 장미는 온갖 지상적 순행(巡行)의 표징이 된다.P.441

삶이 장미처럼 일장춘몽이고 부질없다는 뜻 아닐까? 아침에 피어, 만개했다가 이윽고 시들어가는 장미의 모습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다. 장미를 통해 인간은 인간의 운명을, 인간의 삶을 읽을 수 있다. 이 세상 만물은 책이며 그림이며 거울이니까... 장미는 하나의 존재를 상징한다. 장미라는 한 송이 초라한 우주는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신의 섭리를 보여준다. 그 섭리를 읽어내는 것은, 읽는 사람의 역량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

대단한 존재나, 하찮은 것이나 모두 다 장미. 대단한 장서각을 갖춘 훌륭한 수도원, 그 속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 사건, 중세의 신학 논쟁, 정통과 이단 논쟁, 기독교인들의 아집과 독선, 이 모든 것은 장미다. 부질없는 것들이다. 나의 머릿속을 들끓게 한 어렵기 짝이 없는 두 권의 이야기도 이제 이름만 남은 장미일 뿐

저자는 이 부질없음을 전하기 위해 사흘 동안이나 수도원을 불타게 한 것일까? 대단한 장서들과 보물들은 모두 재가 되었다. 그 모든 것들이 다 부질없었다. 재만 남았다.

문서 사자실이 추워 손이 곱다. 나는 이제 이 원고를 남기지만, 누구를 위해서 남기는 지는 나도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자 했는지도 모르겠다. “스타트 로사 프리스티나 노미네, 노미나 누다 테네무스(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베르나르의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 나오는 일절.).”P.776

이 책이 출판된 뒤로 나(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이 책의 말미(소설의 마지막 문장)에 실린 6보격 시구의 의미는 무엇이고, 이것이 어째서 책의 제목이 되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래서 비로소 대답하거니와,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것들은 그 이름을 뒤로 남긴다. 이름은, 언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존재하다가 그 존재하기를 그만둔 것까지도 드러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는 이 대답과 더불어, 이 이름이 지니는 상징적 의미 해석에 대한 결론을 독자의 숙제로 남기고자 한다화자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소설이라는 것은 수많은 해석을 창조해야 하는 글이기 때문이다P.782 - 개역판 <장미의 이름>에 부치는 말’(옮긴이)

중세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억압했던 중세의 가치는 이제 역사 속에나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마치 장미처럼...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이다. 저자의 의도를 추론해 본다. 저자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사의 부질없음을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중세인들에게는 생사의 결정권을 가졌던 중세의 가치가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역사 속에 기록만 남긴 채... 하여 이름만 남기게 되었다. 존재하다가 존재하기를 그만두어도 이름은 남는 법...

권위란?

수도원 장서관을 철통같이 싸고도는 그 수도원의 그러한 태도는 수도원의 우위를 스스로 허물어뜨리자는 태도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그들이 장서관을 싸고돈 까닭을 이해한다. 만일에 수도원만이 소장하고 있는 새로운 학문이 수도원 밖에서 자유로이 나돈다면 신성한 수도원은 교구의 부속학교나 도시의 대학과 다를 바가 없어지고 이로써 수도원의 신성은 허물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속세와 담을 쌓은 채로 그 권위와 권력을 고집만 하고 있어서 될 일이던가?P.302

최고의 권위는 그에 걸맞은 가치관과 태도에서 나온다. 자기 것만 고집하는 리더답지 못한 태도는 최고의 권위를 추락시킬 뿐이다. 하여 자기가 가진 보물을 공유하고 나눌 의무를 실천해야 한다. 기독교 세계의 가장 훌륭한 장서관을 가진 최고의 수도원이었으나, 폐쇄적인 태도는 수도원의 우위와 권위를 스스로 허물어뜨렸다. 무리를 이끄는 자는 그에 걸맞은 넉넉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리더다.

용기는 자기의 모든 것을 걸고 움직인다.

어쩌면 베노나 베난티오는, 수도사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회칙이나 달달 외고 오는 세월이나 맞고 보내면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뒤로 내가 산 삶이 바로 회칙이나 달달 외면서 오는 세월이나 맞고 보내는 삶이었다. 나는, 세계가 피와 광기의 폭풍 속으로 깊이깊이 가라앉는데도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P.304

이것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주변이 돌풍에 휘말려도 휩쓸려 날려가지 않기 위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살아왔다.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다니... 당연히 그런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자기가 처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대단한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호르헤의 희생양이 된 자들은 회칙이나 달달 외고 오는 세월이나 맞고 보내면서사는 타성에 빠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이단과 정통

버림받은 자들은 자기를 발견하게 되면서부터 권력자들에게 권력의 배분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소외를 의식하는 소외된 자들은, 교리에 상관없이 이단자로 낙인찍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소외를 의식하지 못하는 부류는 교리에 관심을 갖지 못하는 법인데 이것이 바로 이단이라는 미망인 것이야.

세상에 이단 아닌 것 없고 정통 아닌 것 없다. 어느 한 세력이 주장하는 신앙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것은 그 세력이 약속하는 희망인 것이야.P.330 윌리엄 사부

로마 교회가 반대파를 이단으로 모는 것도 이 때문입니까?” - 아드소

그렇다. 자기 휘하로 들어오는 이단을 정통으로 인정하는 까닭, 이단의 세력이 지나치게 강화될 때 정통으로 받아 주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 무슨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개인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세속의 영주들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P.331 윌리엄 사부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것은 정적을 제거할 명분일 뿐. 힘이 없으면 이단으로 밀리는 것. 만일 정적의 힘이 세진다면 그때는 정통으로 받아 줌으로써 연대를 맺는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이단이니 정통이니 하는 판단이 아니라 그 세력이 우리에게 희망을 약속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희망을 약속하는 존재만이 가치를 지닌다. 그들이 약속하는 희망에 의해 인류는 한 걸음씩 전진해간다.




희극이란? 웃음이란?

코미디’, 희극이라는 말은 코마이’, 시골 마을이라는 말에서 비롯됩니다. 말하자면 희극이라는 것은 시골 마을에서 식사나 잔치 뒤에 벌어지는 흥겨운 여흥극인 것이지요. 희극이란 유명한 사람, 권력을 가진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비천하고 어리석으나 사악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겁니다. 희극은 보통 사람의 모자라는 면이나 악덕을 왜곡시켜 보여 줌으로써 우스꽝스러운 효과를 연출하지요. 여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웃음을, 교육적 가치가 있는, 선을 지향하는 힘으로 봅니다. 거짓이 아닌 것은 분명하나 실상이 아닌 것 또한 분명합니다. 그런데 희극이라고 하는 것은 실상이 아닌 것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기지 넘치는 수수께끼와 예기치 못하던 비유를 통해 실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검증하게 하고, ‘아하, 실상은 이러한 것인데 나는 모르고 있었구나하고 감탄하게 만든다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실재보다 못한, 우리가 실재라고 믿던 것보다 열등한 인간과 세계를 그림으로써 성인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 준 서사시보다, 비극보다 더 열등한 것을 그림으로써 진리에 도달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한다는 것입니다.P.734 호르헤와의 대화 중, 윌리엄 사부의 말

희극의 기능에 대해 재미있고 정확하게 정의했다. 지난해서 건너뛰고 쉽지만 이런 보석 같은 내용이 곳곳에 박혀 있어 대충대충 넘어 갈 수 없었다.

호르헤가 연쇄살인을 저지른 이유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이 호르헤의 끔찍한 범죄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책이냐고 묻는 윌리엄 사부의 질문에 호르헤 수도사는 이렇게 답한다.

그것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가 이 서책의 저자였기 때문이오. 아리스토텔레스는 하나같이 기독교가 수세기에 걸쳐 축적했던 지식의 일부를 먹어 들어갔소. ... 오늘날에 와서는 성자와 선지자들까지도 신봉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 철학자의 일자 일언이 바야흐로 세상의 형상을 바꾸어 놓기에 이르렀어요. 이 서책이 공공연한 해석의 대상이 되는 날 우리는 하느님께서 그어 놓으신 마지막 경계를 기어이 넘게 되고 말 것이오.”

“ ..... 여기에는 웃음이 맡는 일몫이 왜곡되어 있어요. 이 서책에 웃음은 예술로 과대평가되어 있고, 식자들의 마음이 열리는 세상의 문으로 과장되어 있어요. 이것이 철학이나 부정한 신학의 대상이 된대서야 어디 말이나 되는 노릇입니까? ... 내가 알기로 웃음은 사악한 인간을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킵니다. ? 바보의 잔치에서는 악마 또한 하찮은 바보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이 서책은 악마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것을 지혜라고 부르고 있어요. ..... 헌데 이 서책에 따르면,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죽음을 쳐부술 수 있는 새로운 파괴적 겨냥이 가능해지게 됩니다.P.736~739 - 호르헤

호르헤 수도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두려워한 궁극적 이유는 웃음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때문이었다. 종교의 힘은 두려움에 있다. 종교가 나약한 인간들에게 내세를 약속함으로써 그들의 신심을 돈독히 했다. 그러나 웃음이 인간을 악마의 두려움에서 해방시키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면 종교의 입지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사람들을 종교에 강력하게 묶어둘 수가 없다. 스스로를 하느님의 손이라고 굳게 믿는 호르헤에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서책이다. 장서관을 지키는 자로서 귀중한 서책을 없애지는 못하지만, 그는 이 책을 반드시 감추어야만 했다.

여러분은 이 기묘한 사실, 즉 어떤 시대든 종교가 극렬할수록, 독단적인 믿음이 깊을수록, 잔인성도 더 커졌고 사태도 더 악화되었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누구나 기독교를 철저히 믿었던 소위 신앙의 시대에는 고문기구를 갖춘 종교 재판소가 존재했으며, 수백만의 불운한 여인들이 마녀로 몰려 불태워졌다.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종류의 잔인한 폭력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것이다.P.38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종교의 기반은 두려움이다> 버트런드 러셀 저 / 출판사 사회평론

그래! 잘 들어 둬. 당신은 속았어. 악마라고 하는 것은 물질로 되어 있는 권능이 아니야. 악마라고 하는 것은 영혼의 교만, 미소를 모르는 신앙, 의혹의 여지가 없다고 믿는 진리... 이런 게 바로 악마야.”P.742 - 윌리엄 사부

이에 대한 호르헤의 대답은 이렇다.

나는 이제 뜻을 다 이루었다. 너는 나를 악마라고 한다만, 그것은 사실과 다르니라. 나는 하느님의 손이었느니라.“P.744 - 호르헤

윌리엄 사부는 이렇게 응수한다.

하느님의 손은 창조하지 감추지는 않는다.”P.744 - 윌리엄 사부

결말

장서관에서 시작된 불은 사흘 동안 수도원 전체를 태운다.

갈기에 불이 붙은 말들은 바람이 하지 못하던 짓을 했다. 즉 불똥이 날지 않은 곳에다 골고루 불씨를 퍼뜨린 것이었다. 교회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대장간과 수련사 숙사에서도 불길이 올랐다. ..... 수도원은 불바다였다. 크고 작은 건물에 차례로 불이 붙으면서 수도원 전체가 불바다로 변한 것이었다.P.760~761

참담한 심정으로 윌리엄 사부는 통탄한다.

우리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장서관이었다. , 그런데 이게 무엇이냐. 가짜 그리스도 올 날이 임박했다. 이제는 학문이 가짜 그리스도를 저지할 수 없게 되었으니... 오늘 우리는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 윌리엄 사부

가짜 그리스도라고 하시면... ” - 아드소

호르헤 영감의 얼굴 말이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증오로 일그러진 그의 얼굴에서 나는 처음으로 가짜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았다. 가짜 그리스도는, 그 사자(使者)가 그랬듯이 유대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고 먼 이방 족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들어 두어라.

가짜 그리스도는 지나친 믿음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하느님이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사랑에서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단자 중에서 성자가 나오고 선견자 중에서 신들린 무당이 나오듯이... 아드소, 선지자를 두렵게 여겨라. 그리고 진리를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자를 경계하여라. 진리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자는 대체로 많은 사람을 저와 함께 죽게 하거나, 때로는 저보다 먼저, 때로는 저 대신 죽게 하는 법이다.

호르헤가 능히 악마의 대리자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저 나름의 진리를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허위로 여겨지는 것과 몸을 바쳐 싸울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호르헤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책을 두려워한 것은, 이 책이 능히 모든 진리의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우리를 망령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해 줄 수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할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비웃게 하고, 진리로 하여금 웃게 하는 것일 듯하구나. 진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에서 우리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좇아야 할 궁극적인 진리가 아니겠느냐?P.762~763 - 윌리엄 사부

이 책이 경계하는 것은 지나친 교조주의다. 자기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호르헤를 망가뜨렸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으나 희대의 연쇄 살인마로 전락했다. 자기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 자기 종교를 지키려는 뜨거운 마음 때문에...

우리가 상상하는 질서란 그물, 아니면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고기를 잡으면 버리게 되는 그물, 높은 데 이르면 버리게 되는 사다리 같은 것... ....... 그래, 유용한 진리라고 하는 것은 언젠가는 버려야 할 연장과 같은 것이다.P.764 - 윌리엄 사부

진리란 새로운 진리가 나타날 때까지만 잠정적인 진리일 뿐. 영원한 진리는 없다. 그런 유연한 사고야말로 호르헤와 같은 독선과 아집에 빠지지 않는 길이다. 열린 마음, 세상을 살아갈 때뿐만 아니라, 학문의 길에도 이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뒤로는 그분을 다시 뵙지 못했다. 금세기 중엽 역병이 유럽을 휩쓸 당시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 바라건대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수습하시되, 지적인 허영에 못 이겨 그분이 지으신 허물을 용서하시기를...

저자 움베르토 에코가 자신의 현학적 허영으로 책을 심하게 어렵게 써 놓은 것에 대한 애교섞인 사과처럼 들려서 웃었다.




[인상깊은 문장]

그때 사부님은, 우주라고 하는 것이 아름다운 까닭은, 다양한 가운데에도 통일된 하나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통일된 가운데에서도 다양하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P.39

내가 이러는 것은 우리가 하느님 뜻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어디어디까지가 하느님 뜻이라고 우리가 울타리를 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P.41

죽음은 나그네가 맞는 휴식, 곧 모든 시름의 끝이다.”P.677 우베르티노 수도사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보고 싶은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 세상이 소실되었다고 믿거나 아예 씌어지지도 않았다고 믿는 책... 어쩌면 이 세상에서 한 권밖에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당신의 소장품, 바로 그겁니다.P.726 - 호르헤와의 대화 중, 윌리엄 사부의 말

그 뒤로는 그분을 다시 뵙지 못했다. 금세기 중엽 역병이 유럽을 휩쓸 당시 돌아가셨다는 소문을 들었을 뿐이다. , 바라건대 하느님께서 그분의 영혼을 수습하시되, 지적인 허영에 못 이겨 그분이 지으신 허물을 용서하시기를...P.771~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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